산으로

왕방산과 국사봉을 종주하다

와월당 2009. 10. 20. 14:45

3년전(2006년) 초봄 왕방산을 처음 찾았을 때, 국사봉 종주를 하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을 이번 산행에서 풀었다. 왕방산 지난 2006년 3월에 다녀갔는데,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뚜렷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내 기억의 한계이거나 그저 평범한 산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왕방산을 거쳐 국사봉과 깊이울 유원지를 경유하는 종주산행을 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철원에 살고 있다는 전우를 27년만에 만나기도 했다.

 산행들머리인 무럭고개에 이른 것이 9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안혁환이 김세호에게 연락을 하였는데 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여 무럭고개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김세호는 기다린지 얼마되지 않아 직접 차를 몰고 나타났다. 차에서 내리는 김세호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젊고 탄력이 있던 피부는 어느새 주름진 얼굴의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은 우리들의 모습에서 너무나 뚜렷했다. 김세호는 군복무때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또한 같은 내무반에서 3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냈다. 김세호에게 같이 산행할 것을 권했지만 가족행사가 있어 잠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막걸리 한잔으로 달래고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왕방산을 거쳐 국사봉으로 종주하기 위해 심곡리로 넘어가서 심곡교 옆에 주차를 하고, 다시 무럭고개로 돌아왔다. 김세호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를 태워주었다. 산행에 들어간 시간은 10시 15분 경이었다. 무럭고개에서 왕방산 정상까지는 4.8km인데 대체로 완만한 산등성이길이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가을이라는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게 다음날 오전까지 요란한 천둥 벼락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쳤었다. 그때 떨어진 듯한 나뭇잎과 솔가리가 길바닥과 숲을 뒤덮고 있었다. 쌓인 낙엽을 밟고 걷는 것, 마치 영화배우가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레드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화려한 치장을 한 쪽은 바뀌었지만.... 발바닥에 닿는 푹신한 느낌과 숲의 향기가 상쾌함을 더해 준다.

 

 

 한국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3년 전 산행 때 올라왔던 길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붉은 단풍잎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짙어지는 단풍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등산로 중간중간 깊이울 유원지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난다.

 

 

 

 

 

 

 헬기장에 이르자 그 동안 희미하던 3년 전의 산행 기억이 되살아났다. 헬기장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데 처음 올라설 때는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억새풀이 무성한 정상이 보인다.

 

 

 

 

 

 

 

  왕방산으; 유래는 신라 현강왕 3년(872)에 도산국사가 머무르고 있을 때 국왕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하여 이름붙여졌다는 설과 조선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서울로 환궁하는 도중 왕자들의 골육상쟁 소식을 듣고 그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산에 있는 사찰(현재의 보덕사)을 방문, 수일간 체류했다 하여 산 이름을 왕방산, 절 이름을 왕방사라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내가 3년 전에 왔을 때는 王訪山(아래 사진)이었던 것이 王方山으로 바뀐 것을 보아도 왕방산의 이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왕방산 정상에는 11시 50분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부근 남쪽 언덕에 무성한 억새가 깊은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왕방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천은 넓은 들판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포천(抱川)이라는 이름에 내 천(川)자가 들어간 걸로 보아 물이 풍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왕방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국사봉으로 향했다. 국사봉은 왕방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붉은 물감을 흩뿌린 듯 얼룩진 산줄기가  쪽빛 하늘을 향해 봉긋이 솟아 있다.

 

 

  진달래의 단풍이 이리 고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모두가 화려한 색동 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늦둥이 단풍나무 한 그루가 나홀로 푸른 잎을 뽐내고 있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전기, 송전철탑이 등산로에 서 있다.

 

 

 깊이울고개와 통재비고개를 지나면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국사봉에 오르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가파르긴해도 머지 않아 정상에 도달 할 수 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뒤돌아 본 왕방산 정상의 모습이다.

 곱게 물든 단풍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오후 1시 30분 경에 국사봉 미군부대앞 헬기장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국사봉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없다. 아마 군부대가 정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헬기장에서 부대 앞에까지 콘크리트 포장길을 만들어 놓았다.

 

 

 

 

 부대앞에서 오른쪽 철망을 따라 비좁게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철망 너머로 부대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국사봉에서는 우리가 지나온 산등성이 길과 깊이울의 아름다운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 정취가 무르익어가는 모습이다.

 

 

 

 국사봉에서 내려오는 길도 절골에 이를 때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는 데, 오를 때보다 훨씬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무릎에 통증이 왔다.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 바위 틈에 소나무 고목 군락을 만났다. 결코 놓칠 수 없는 풍경이 내 눈길을 잡아 끈다. 소나무 고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늘어진 가지 사이로 왕방산 산정이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가파른 길이 끝나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절골을 지나 깊이울에 이르렀다. 무럭고개에서 먹은 감자전과 막걸리 때문인 지 모두들 두 산정을 오르내렸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깊이울 에 도착한 것이 오후 두시경이었는데 그때서야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깊이울에 흐르는 맑은 물 속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그러나 채 1분도 견디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왔다. 물이 몹시 차가웠다. 그러는 중에도 흐르는 물 위로 연방 떨어진 낙엽이 물길 따라 이리저리 맴을 돈다. 돌부리에 걸린 솔가리와 낙엽들이 계곡 군데군데 보를 이루었다.

 

 

 

 

  안혁환이 싸온 김치 김밥과 컵라면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깊이울 유원지를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유원지 계곡 군데군데 검 푸른 빛이 도는 소(沼)가 눈에 띈다.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 속에 노닐던 피라미가 발자국 소리에 놀란 듯 돌틈으로 숨어든다.

 

 

 

 

  

  

 깊이울 저수지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심곡리에 주차를 하는 바람에 여기서도 30분 이상 걸어가야만 했다.  정확한 정보가 없이 단순히 지도만 보고 온 것이 고생을 자초한 것이다. 반면에 코스모스 핀 마을 길과 인삼밭, 수백년은 되었을 법한 대추나무 등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색 다른 경험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심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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