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경인년 새해 시무식을 길거리에서 치러야 했다. 폭설로 시작된 새해 첫 출근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든 도시의 동맥 시스템이 멈추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2010년 1월 4일 서울에 하루동안 내린 25.8센티미터의 눈은 40여년만의 최대폭설로 기록되었다.
작년 연말에 두어 차례 내린 눈은 예고편이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새벽 눈을 뜨자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질 소리에 눈이 내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드리운 커튼을 밀어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창너머로 붉은 가로 등 불빛이 검정 얼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쉼 없이 흘러내리는 얼룩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회색 구조물 들은 이미 하얀 눈 속에 그 모습을 감추었고, 희미한 어둠 속의 허공은 나풀나풀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송이로 가득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 마당으로 내려갔다. 이미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먼저 하얀 눈으로 덮인 마당을 쓸어냈다. 그리고는 길가로 나갔다. 먼저 나와 눈을 쓸고 있는 이웃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눈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일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 한번 쓸어내고 뒤돌아 보면 어느새 다시 쌓인다. 서너 차례 눈을 쓸고나니 길 가장 자리에 더 이상 눈을 쌓아 둘 곳이 없다. 출근 시간이 다가왔지만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펑펑 쏟아지는 눈은 세상을 온전히 묻어 버릴 기세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는 그렇게 눈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더 이상 눈을 쓸어내는 것도 무의미 했다.
폭설에 뒤이어 찾아온 동장군은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소한에 찾아온 혹한은 눈폭탄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꽁꽁 묶어 버렸다. 한파와 폭설이 겹쳐 교통이 마비되고 농산물을 비롯한 모든 유통이 멈춰 버렸다. 시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식당과 상점에 넘쳐나던 손님들도 자취를 감췄다. 차디찬 겨울바람만 새하얀 세상을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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