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참 요상한 날씨

와월당 2009. 10. 23. 11:44

간밤에 천둥소리가 나고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릴 비몽사몽간에 듣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평소 습관대로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과연 비가 내린 흔적이 뚜렷했다. 가을이란 계절이 무색하게도 요즘 천둥번개가 잦다. 시월들어 벌써 네 번째다. 거기다가 봄에만 오는 줄 알았던 황사까지 10월에 날아 왔다.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것이 정말로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참 나약한 것이 인간들이다. 기후에 변화가 일어나니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아닐까 더럭 겁부터 내니 말이다.

 오늘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10월 들어 몇 차례 깜짝 추위가 오기도 했지만 낮에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 밭엘 나갔는데 배추가 자라지를 못하고 노랗게 낙엽이 져 있었다. 올해는 묵은 땅에 밭을 일구어 심었는데 워낙 땅심이 좋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동안 농사를 짓던 곳은 바로 옆에 새로 들어온 꽃집에 때문에 더 이상 사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일군 밭에는 무, 배추, 갓, 알타리 등 김장용 채소와 상추, 쑥갓, 쪽파 등을 심었다. 그런데 배추가 영 자라지를 않아 김장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상강절기를 전후하여 가을 걷이가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도심 속에서 맞는 상강은 그저 평범한 가을 속의 하루일 뿐이다. 빌딩 숲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들판에 하얗게 내린 서리를 볼 수가 없다. 우리집은 다행히도 아파트가 아니어서 옥상을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작은 온실도 만들고 화분을 놓아 여러 가지 채소를 심는다. 올해는 호박과 조롱박을 화분에 심고, 덩굴을 원두막 지붕으로 올려 주었더니 뒤 늦게 조롱박이 몇 개 열렸다. 애호박도 몇 개 따먹었는데, 호박 한 개는 아직 달려 있다.

 올해는 태풍이 우리나라를 모두 비켜 갔다. 다만 간접적인 영향으로 비가 왔을 뿐이다. 태풍이 도움만 주고 피해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올해는 태풍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올 가을 날씨가 정말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시월에 천둥번개가 잦은 것도 그렇고, 가을 황사가 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예년 같지 않은 날씨가 왠지 불안하다. 마치 태풍전야의 하늘처럼 으스스한 느낌이다.

 도심 속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다만 기온이 높고 낮음을 피부로 느낄 뿐이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높은 빌딩과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이다. 밤이면 화려한 불빛 속에 사람도 하늘도 나무도 숲도 묻혀 버린다. 계절을 잊고 사는 사람들, 추우면 뚜꺼운 옷을 입고 더우면 훌렁 벗어던지고 거리를 활보한다. 도시인들에게 24절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달력에 쓰여진 낙서일 뿐이다.

 빌딩 속에서 생활하고 빌딩 속에서 잠을 자고, 빌딩 사이를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늘 길거리는 자동차로 뒤덮인다. 길바닥에서 자동차가 뿜어내는 가스는 도시의 하늘을 덮어 태양빛을 가린다. 매연 속에 도시는 열섬으로 변하고, 열섬이 되어버린 도시에 또 사람들이 몰려든다.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자동차의 폭증으로 지상의 길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땅속으로 굴을 뚫어 지하도를 만들고 지하철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하철이 아니면 출근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었다.

 자동차의 매연으로 열섬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계절을 잊고 산다. 꺼질 줄 모르는 도시의 환한 불빛 속에 깜깜한 밤도 사라졌다. 요란한 기계소리, 자동차 소음에 잠못들고 아침햇살을 거부하는 빌딩 속의 올빼미족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상쾌한 아침은 없다. 부시시 눈을 뜬 아침, 간밤에 먹은 야식에 더부룩한 속은 아침밥을 거부한다. 지친 몸으로 출근을 하고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늘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홍등가의 불빛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늘 사람들은 꿈을 꾼다. 도시를 탈출하는 꿈을 꾼다. 나무가 있고, 숲이 있는 저 푸른 언덕 위에 집을 짓는다. 도시인들은 누구나 저 푸른 언덕에 집을 짓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 꿈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꿈을 목표로 바꾸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다. 꿈과 목표는 다른 것이다. 꿈은 이룰 수 없지만 목표는 이룰 수 있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귀농의 꿈을 꾸고 있었다. 지금은 그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농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텃밭도 일구며, 농사법을 익히고 있다. 30여년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아직은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벅찬 일인가? 도시를 탈출하는 것. 그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이룰 수 있는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