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산태극의 땅 계룡산

와월당 2012. 3. 8. 22:02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는 명산인 계룡산은 내가 꼭 가고 싶은 산이었다. 계룡산 북쪽에 있는 갑사를 출발하여 남쪽의 신원사로 이어지는 이번 종주산행은 내 기대를 만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풍수학風水學에서 말하는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이란 산줄기나 물의 흐름이 태극문양을 이루고 있는 자리를 말한다. 또한 사신사四神司 ,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이 각각의 자리인 서쪽(), 동쪽(), 북쪽(), 남쪽()에 적절하게 있다면 명당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가 처음 조선을 건국하고 첫 도읍지로 결정했던 곳이 바로 계룡산을 등지고 있는 신도안(계룡시 남선면)이다. 그러나 도읍지 조성공사 진행 중에 하륜의 건의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바뀌고 말았다.

 

 버스가 갑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잿빛하늘에서 금방 눈이라도 뿌릴 것만 같다. 약간 가벼운 차림으로 온 것이 걱정된다. 국립공원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지만 이곳 매표소에서는 사찰관람료로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산행은 들머리에서부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산행이 시작되는 갑사 지구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굴참나무를 비롯하여 수십 년 아니, 백년도 넘었을 법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에 잔설이 남아 있다. 봄의 길목에 섰건만 불어오는 산바람이 차갑다. 옛 시인은 이를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으니....

 

앙상한 나뭇가지 끝 새 움이

잔설을 녹여내니

싱그러운 숲의 향연 멀지도 않았다네.

계곡의 맑은 물속에서

나뭇가지 일렁이고

낙엽 배는 이리저리 춤을 춘다.

 

 

 앙상한 나뭇가지, 황량한 겨울 숲에 어김없이 푸른 솔숲이 나타난다. 솔숲이 없는 산이라면 어찌 우리나라의 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덜겅과 너설지대뿐인 계곡에 바위틈으로 뿌리를 박은 고목들은 그 숱한 세월을 잘도 견뎌냈다. 눈보라, 비바람에 찢기고 할퀸 자국은 그 모진 세월을 오롯이 견딘 흔적이리라. 계곡 길가에 이끼 옷을 입은 기이한 느티나무 한 쌍이 눈에 띈다. 사람 키 높이쯤에서 서로 다른 나뭇가지가 만나 하나가 되었다.

 

 

 갑사지구인 대성암과 신흥암을 지나자 포장길은 끝이 나고, 납작한 돌로 포장을 한 길이 이어진다. 가팔라진 길엔 돌로 계단을 만들었다. 과연 국립공원답게 탐방로가 깨끗하다. 계곡 가운데를 집채만 한 바위가 버티고 서 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곤 돌과 바위뿐이건만 나무들은 잘도 자란다. 조금도 올라가자 작은 폭포가 나타난다. 아주 작은 폭포 앞에 붙은 이름이 거창하다. 바위에 뚜렷한 음각으로 팔곡八曲 용문폭龍門瀑이라는 글자가 두 줄로 새겨져 있다. 갈수기이긴 하지만 낙엽 걸린 폭포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애처롭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를 지나자 본격적인 경사로가 시작된다.

 

 

 점점 가팔라지는 돌계단 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숨을 헐떡이며 금잔디 고개에 올라서자 고개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다. 금잔디 고개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산등성이 길을 따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늘진 곳에 남아 있는 잔설이 얼어붙은 길은 매우 미끄럽다. 몇몇 사람들이 아이젠을 꺼내 장착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올라온 계곡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하얗게 쌓인 잔설과 거친 바람 때문에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

 

 

 빙판길이 끝날 때쯤 삼불봉의 세 봉우리가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불봉 갈림길이 나타난다. 갈림길에서 삼불봉까지는 200미터 정도의 가파른 경사로다. 철제 계단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데 매우 가파르다. 계단을 오르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가 날뛰는 것 같은 거친 바람이다. 삼불봉에 올라서자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삼불봉에서는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을 비롯한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이 줄지어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지나온 갑사계곡으로 산줄기가 시원스럽게 뻗어 내려갔다. 반대편 산줄기는 동학사계곡을 따라 넓은 들판을 향해 달려간다. 천황봉에서 연천봉에 이르는 울룩불룩한 봉우리 아래로 뻗어 내린 산록에 잔설이 남아 하얀 설경이 펼쳐진다. 산중의 잔설은 세찬 바람을 부추겨 봄을 시샘하듯 가만히 있는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댄다. 천황봉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올라갈 수 없다.

 삼불봉을 내려가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자연성능 길이다. 말 그대로 성곽처럼 생긴 산등성이길이다깎아지른 절벽은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오르락내리락 거친 너설 길과 질척이는 흙탕길이 반복된다산자락을 달려온 거친 바람은 쉴새없이 휘몰아친다. 그래도 살을 에는 칼바람은 아닌걸 보니 봄이 멀지는 않았나 보다. 비좁은 바위틈에 꿋꿋이 버티고 있는 소나무가 눈길을 붙든다. 나무도 사람도 사방이 트인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곳은 없다.

 

 

 삼불봉에서 시작된 산등성이 길은 좁고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기암괴석의 암봉들,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박은 나무, 너럭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또 사방이 툭 트여 있어 시원스럽게 뻗은 산록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좁은 산등성이 길은 관음봉 아래까지 계속된다.

 신도안이 비록 조선의 도읍이 되지는 못했지만, 덕유산에서 북쪽으로 올라온 산줄기가 금강과 마주치는 지점에 계룡산이 있고, 다시 계룡산에서 왼쪽으로 굽어 서남쪽으로 뻗어나가는 모양 즉, 산태극山太極을 이루고 있다. 산태극은 풍수 지리적으로 매우 뛰어난 지맥이라고 한다.

 국립공원인 계룡산은 조선건국 초기 도읍지를 정할 때 무학대사가 산의 지형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의 형국이라 하여 닭(,)과 용()자를 따서 계룡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계룡산은 북쪽의 묘향산과 남쪽의 지리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삼대 영산靈山으로 꼽히고 있다.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거센 바람과도 맞서야 하는 힘겨운 산행이다. 관음봉 정상에는 해발 816미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지도상에는 765미터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표석이 잘못 제작된 것 같다. 국립공원이라는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수정된 표석을 세웠으면 한다.

 

 

관음봉 정상에는 나무로 계단과 의자는 물론, 탐방객들의 편의를 위한 정자도 세워져 있다. 삼불봉을 지나 관음봉에 이르기까지는 산세가 험하고 좁아 제대로 쉴 곳이 없다. 관음봉 정상에서 이처럼 쉴 곳이 있다. 약한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관음봉을 지나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산허리 길은 잠시 조용한 산책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문필봉을 우회하여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길로 접어들자 다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바람이다. 바람을 타고 거대한 운무가 무서운 속도로 산마루를 넘는다. 눈앞의 산봉우리가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위대한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을 삼킬 같던 운무는 또 어느새 허공으로 사라진다.

 

 

 

 

 연천봉 아래 등운암을 지나는 산등성이 길은 소나무가 가지를 뻗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터널을 지나고, 산모퉁이를 돌때마다 보일 듯 말 듯 하던 신도안의 넓은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넓은 들은 북쪽으로 계룡산을 등지고 동서로 뻗은 산줄기는 넓은 들판을 좌우로 감싸고 있다. 남쪽으로는 작은 저수지가 있고 얕은 산봉우리가 솟아 있어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을 준다. 비록 풍수지리에 대한 안목이 없더라도, 땅의 생김새를 직접 보게 되니 왜 명당자리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산등성이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자 보광암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길은 포장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문양으로 포장된 길이다. 마치 퍼즐 조각들을 맞춰 놓은 것 같다.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절 이름은 보이지 않고 대웅전이라는 현판만 있는 암자가 나타났다. 지나가는 탐방객에게 물으니 신원사 대웅전이라고 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신원사 입구가 보인다.

 

 

 

 신원사는 태조 이성계가 새 도읍을 연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중악단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악단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 하악단과 함께 삼악단 중의 하나다. 지금은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어 없어지고 중악단만 남아 있다. 건물내부에는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중악단은 보물 제412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궂은 날씨로 힘이 들긴 했지만 기대이상으로 멋진 산행이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하루 앞두고 다녀온 산태극의 땅, 계룡산이 명산임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201234일 계룡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