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얼마 전 은행직원으로부터 소상공인 지원센터에서 보증서를 받아오면 싼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여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찾아갔다.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 신용보증재단이었다. 이곳에서 자기가 필요한 자금을 대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나처럼 개인 사업자거나 중소기업인과 같은 소상공인들의 사업자금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해준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대출이자의 일부를 지원 받을 수도 있어 영세 소상공인들에게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구에서 대출받을 금액과 현재 내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의 실질적인 매출규모와 영업이익 등을 적은 신청서와 신용조회 동의서도 함께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십여 분을 기다리자 나에 대한 신용조회를 끝냈는지 상담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가 작성한 신청서를 들고 나타나 바로 옆에 있는 상담실로 안내했다.
작년 말에 그 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서 쓰지 않았던 옥탑 방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장사도 잘 안되던 터라 우선 집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자금 사정을 봐서 새로 가게를 열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찾게 된 것이다. 상담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는 순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상담이라기보다는 내가 마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사정을 하러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먼저 사업규모부터 따지기 시작했다. 임시로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매출은 보잘 것이 없었다. 또한 나와 같은 소상공인들이 요즘에 겪고 있는 실상이기도 하다. 이 정도 규모로 왜 이런 돈을 빌리려 하느냐며, 이 정도라면 요청한 금액의 1/3정도의 금액을 보증해주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장 현장 실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업장이 아내에 명의로 되어 있다고 하자 배우자가 연대보증을 설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그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연초에 개인사업자의 창업활성화를 위해 연대보증제도를 없앤다는 발표가 있었다. 더구나 연쇄부도를 일으킬 수 있는 연대보증의 폐해 때문에 법인의 연대보증도 대폭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 되었다. 그런데도 연대보증까지 세우려하다니 내가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뜻밖이었다. 이처럼 상담 내내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본연의 임무보다는 채권확보에만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스스로 자기네들은 빚보증을 서는 곳이라고도 했다. 은행대출이자 중에서 2%를 지원해 주는 대신, 보증 보험료로 1%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출이자의 1%를 지원 받는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보증보험까지 들어야한다면 결국 내가 돈을 갚지 못해도 보험사에서 대신 갚는 것이니 자기네들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직원은 상담 내내 고자세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도 소상공인으로서 좀 더 싼 대출을 받으러 온 것인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매출규모가 적으면 그 만큼 대출금액이 적다고 했다. 내가 작성한 대출신청서를 보고는 이 내용대로라면 대출금액이 신청한 액수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다른 대출을 받을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눈까지 부릅뜨며 대출이 그리 쉬운 것으로 알았느냐는 듯, 윽박지를 태세였다. 나는 그 직원이 왜 그렇게 고자세로 상담에 임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 이상은 상담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했다. 결국 대출을 받지 않겠다고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담실을 나오고 말았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온 거리가 하얀 눈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에 가로등 불빛에 휘날리는 눈송이가 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철역을 향해 걷는 도중 발목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눈에 양말이 축축해져 온다. 한숨만 나왔다. 정부의 정책을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상공인을 적극 지원해야 할 지원센터에서 오히려 대출을 빌미로 소상공인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정책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소상공인이란 영세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자, 중소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자들은 그야말로 빈사상태다. 대기업에서 문어발식 경영으로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대형 할인매장은 물론 골목상권의 대명사인 슈퍼마켓마저도 대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점령을 해버린 것이다. 최근에는 재벌의 딸들이 너도나도 빵가게를 열었다가 언론에 보도되자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횡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패션이나 각종 특허를 막대한 자본력으로 매수 또는 가로 채는 일이 다반사다. 이처럼 대기업들은 돈이 될 만한 사업은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영세사업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의 친 재벌정책은 대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작년 우리나라의 무역흑자가 1조 달러를 넘은 것이나 1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것도 대기업의 공으로만 볼 수 있을까? 대기업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나 대기업에서도 이런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만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소상상공인 지원센터에서는 소상공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한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올해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주요 정책방향에도 ‘소상공인 지원 서비스 향상’이라는 항목이 엄연히 포함되어 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한 서비스가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장밋빛 정책을 내놓는 다고 일선 실무진에서 알아서 그렇게 행해지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소상공인을 위한다면 현장에서 소상공인들이 부딪히는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런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