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까미'
요즘 아침마다 눈을 뜨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까미에게 사과 껍질 말린 것을 먹이는 일이다. 늘 나와는 견원지간이던 우리 집 애완토끼 까미에게 말이다.
“아빠! 많이 먹이지 마세요! 까미가 설사해요.”
딸애는 가끔 토끼를 괴롭히는 아빠가 미심쩍어 먹이 주는 것조차 못 미더워 한다. 아내는 내가 까미를 때리는 걸 보면 기겁을 한다.
“동물은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그래야 오래 살지.”
물론 이유 없이 까미를 괴롭히는(?) 건 아니다. 옥상정원 화분에 물을 주거나 채소 가꾸는 일을 하는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니 얄밉기도 하다. 특히 흙냄새를 좋아하는 토끼의 본능 때문에 애써 뿌려놓은 화분을 망쳐놓기 일쑤다. 눈 깜작할 사이에 화분으로 올라가 흙을 헤집어 놓기도 하고, 잘 자란 싹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내게는 까미가 미울 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 오줌세례를 받고 나면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까미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말 못하는 짐승에게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금방 후회를 하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약자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있다. 어찌 내게 측은지심이라는 게 없으랴.
우리 집 옥상에는 채소가 많아 토끼가 놀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가끔 분갈이 작업을 할 때면 흙 위에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흙을 깔아주기도 한다. 가끔 화를 낸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좀 더 잘해 주고 싶기도 하다.
요즘 우리 집 까미가 털갈이를 하느라 옥상에 올라가면 토끼털이 많이 날린다. 또 아무데나 똥과 오줌을 싸놓아 아내가 매일 청소를 한다. 여기저기 싸놓은 똥을 보면 아내가 얼른 치운다.(아마 내가 그 일로 까미를 괴롭힐까봐서 그런 것 같다.) 아내는 까미에게 오줌세례를 받아도 털이 날려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귀여운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까미를 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끔 질투를 하기도 한다.
까미는 딸애가 인터넷을 통해 분양을 받아 왔다. 토끼는 털이 하얗거나 흰색과 회색이 적당히 섞인 것이 보통인데, 우리 집 까미는 온통 새까만 털로 뒤덮인 수놈이다. 딸애가 분양을 받으러 갔을 때는 어미가 낳은 여러 마리 새끼 중에서 털이 하얀 놈들은 일찌감치 분양이 되고 털이 새까만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한 마리가 바로 우리 집 식구들과의 인연을 십여 년간 맺게 된 까미다. 털이 까만 놈이라 집으로 데려오자 말자 까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딸애가 까미를 데려온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토끼의 수명은 보통 6-8년 정도라고 한다. 까미는 사람으로 따진다면 90이 넘은 셈이니 대단한 장수토끼가 아닐 수 없다. 까미가 이처럼 장수를 하는 데는 타고난 체질과 주변 환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흰색보다는 검정색이 더 건강할 뿐 아니라, 애완토끼이면서도 실내에서 키우지 않고 넓은 옥상정원에서 키워 충분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또한 내가 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도 장수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 내내 풀이 죽어 있던 까미가 아침저녁 선선한 가을 날씨에 신바람이 났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있노라면 졸래졸래 잘도 따라 다닌다. 내가 옥상출입문을 넘어가면 조르르 달려와 문턱에 다리를 괴고 머리를 내민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내가 말린 사과껍질을 줄라치면 잽싸게 받아먹는다.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모습이 하도 좋아 보여 자꾸만 주게 된다. 까미야!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살자. <2011 신묘년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