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성내천 물길 따라

와월당 2010. 5. 22. 14:02

  서울에 입성한지도 어느새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보다 훨씬 빠른 초고속 시대이니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자고 일어나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빌딩들이 저마다 마천루가 되려고 한다. 한강다리를 건너다보면 한강변을 따라 회색 장막을 드리운 건물들이 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독점하고 있다. 전체의 조화로움보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찾는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장막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조금이라도 더 높게, 더 넓게 지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탐욕으로 얼룩진 도시는 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요즘 들어 난 개발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변화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도심의 하천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청계천을 매립하여 도로를 건설하고 빌딩을 대규모로 지어, 한때는 산업발전의 상징이기도 했던 청계천 일대의 고가다리를 헐어내고 옛 청계천을 살려낸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물론 시장의 임기 내에 끝내야 한다는 실적위주의 성급한 추진으로 졸속적인 복원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개발에만 치중했던 정책이 생태계 복원사업을 통해 도시의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청계천의 복원을 계기로 도심 하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커졌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시커먼 물과 악취로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했던 실개천들이 많았다. 심한 악취가 나는 실개천들은 복개가 되어 아예 하수구로 전락한 곳도 많다. 대도시일수록 하천 복개로 더 많은 주차장과 도로를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질악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는 아예 뒷전이었다. 그러나 그런 실개천들이 요즘 들어 하나 둘 되살아나고 있다. 각 지방자치 단체를 중심으로 친환경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그 첫 사업으로 생태하천의 복원을 꼽고 있다.

특히 서울의 송파구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성내천은 도심의 하수구로 변해 버린 실개천을 되살리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성내천은 남한산성의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송파구 마천동을 시작으로 올림픽공원을 관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성내천은 한강의 제1지류이기도하다. 그러나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었다. 30년 넘게 마른 바닥을 드러내던 성내천이 2005년부터 시원한 물줄기를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주변에는 생태공원이 조성돼 삭막한 구민들에게 쾌적한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천변에 야외 공연장으로 조성된 물빛광장에서는 매주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야외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성내천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청둥오리, 원앙이가 짝을 지어 유유히 헤엄을 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두루미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요즘 산란기에 접어든 팔뚝만한 잉어들은 수초 사이에서 짝짓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서 퍼덕거리는 잉어 떼의 모습을 도심한복판 개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성내천은 수질악화를 막기 위해 5.1km의 수로를 따라 창포, 갯버들 등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4만 7천여 본의 수생식물을 심었다. 또한 수질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천 바닥에 퇴적물을 매일 치우는 등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철저한 관리 덕분에 깨끗한 수질에 물고기가 서식하는 먹이 사슬이 되살아나고, 철새가 찾아오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심 속의 생태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청계천이나 성내천 등과 같은 도심 속 생태하천의 복원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수년 전만해도 먼 선진국들의 일로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생태계에 대한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성내천 물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발길은 사계절 끊임이 없다. 여름이면 인공폭포에서 뿜어내는 물줄기와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싱그러운 수초가 가득한 생태하천을 매일 거닐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서울에 입성한지 20년 동안 자꾸만 늘어나는 마천루에 황폐해져가는 도시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황폐해져만 가던 도시에 안심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조금씩 넓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