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밤새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목이 간질거리고 기침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보, 나 가까이에 오지 마. 그리고 아침밥상 따로 차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면도구도 따로 쓰고 아침밥도 나 혼자 방에서 따로 먹었다. 다행히 몸에 열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식구들까지 걸리면 큰 일이니까. 출근을 하자마자 바로 앞 상가건물에 있는 작은 의원으로 갔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의원에는 환자가 없어 썰렁하기까지 했다. 접수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서 자 귀구멍에 체온계를 집어넣고 검사를 마친 의사는 열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하며 감기약 처방을 해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처방전을 들고 약을 사기 위해 약국으로 향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시작된 감기는 약을 복용한 지 3일 만에 많이 호전되는 듯 했다. 그러나 4일째인 일요일 아침 다시 온 몸이 쑤시고 아픈 몸살이 왔다. 결국 매주 빠지지 않던 아내와의 산행마저 포기한 채 혼자 방안에 누워 있었다. 딸애와 아내가 산행을 간 후 두 사간여를 방안에 누워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나갔던 아들녀석도 제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11시가 넘어서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갑갑하게 집에 있는 것 보다는 산행을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약간 두텁게 입고 집을 나섰다. 갑작스레 찾아온 강 추위로 바깥 공기는 몹시 쌀쌀했다. 서울 경기지방에는 한파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여러겹으로 입은 옷 덕분에 추위는 견딜만 했다. 춥긴 해도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남한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남한산성 입구에 내리자 추운 날씨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의 행렬 속에 끼어 들었다.
상점가를 지나던 중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친구를 만났다. 아침에 같이 산행을 가자고 했던 친구다.
"벌써 내려오는 거야?"
"그래. 못간다더니 웬일이야."
"방안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 나왔어. 먼저 내려가."
"그래. 감기에 걸려도 움직여야 빨리 낫지."
친구의 말처럼 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을 걷는 사이 방안에 있을 때보다는 머리가 많이 맑아졌다.
가파른 서문길을 따라 올라가는 데 등에 땀이 배어났다.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산등성이에 불어오는 바람이 매섭도록 차갑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풍이 아름답던 산등성이의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서문전망대에 올라서자 많은 사라들이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망대에는 지난 주까지만해도 없었던 조망용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서울시가지는 물론 서해 앞바다까지 볼 수 있다. 이젠 망원경까지 설치해 놓았으니 서해바다에 떠 있는 배까지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시커먼 오염띠가 구름과 함께 시가지를 덮고 있어 가까운 서울 동남부 일대만 조망할 수 있었다.
가벼운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많이 개운해진 듯 했다. 하지만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샤워는 하지 않았다. 잠을 잘 때에도 침대가 불편하여 바닥에 요를 깔고 잤다. 다행히 월요일 아침에는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다.
환절기인 지금 신종플루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미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유명 연예인의 아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된 뒤 불과 삼일만에 숨지는 일이 있어 큰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이처럼 신종플루로 인해 온 나라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럴 때 감기에 걸린다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병원에서 신종플루 검사를 받아야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에 많은 의심환자들이 몰리다보니 멀쩡한 사람도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에 감염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받아보고 싶지만 혹시 병원에 갔다가 병이 옮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쉽사리 병원에 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웬만큼 큰 병원들도 환자들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여 의료진들조차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이럴 때는 스스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건강관리를 잘 해왔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이번 감기몸살로 다시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