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후 단풍과 낙엽이 한데 어우러진 검단산의 절경
아침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제와는 너무 다른 날씨다. 시월 내내 포근하던 날씨가 11월 첫날인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영하로 떨어졌다. 너무 갑작스런 동장군의 엄습이다. 올 가을 들어 첫 얼음이 얼고 강원도에는 눈까지 내린다고 한다.
지난 주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까지 바쁘던 일이 갑자기 뜸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컴퓨터 모니터에 매달리게 된다. 모니터를 오래 보다보면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도 마우스와 자판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한다. 인터넷이란 것이 보편화 되면서 이제는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요즘은 모든 지식과 쇼핑에 관한 정보가 모두 인터넷에서 나온다. 소리없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인터넷은 어느새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고 말았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산행기록을 공유하기 위해 이제는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하남시 산곡동 에니메이션고교 산행들머리에서 바라본 검단산>
토요일에 시작된 비가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된다는 예보가 있어 가까운 검단산으로 산행지를 잡았다. 비는 새벽녘에 그쳤다. 오금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검단산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을 할 수 있다. 오금역에서는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려 하남시로 가는 30-5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하남시 공영차고지에서 내렸다. 비 개인 후의 검단산은 깊어가는 가을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버스가 줄 지어선 차고지를 지나 산행들머리에는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이 산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고추봉까지는 가파라른 산등성이길이 계속된다. 물을 잔뜩 머금은 잣나무가 가파른 산허리에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닥에 쌓인 낙엽과 솔가리가 이불을 깔아 놓은 듯 포근한 느낌을 준다.
고추봉에 올라서니 팔당호가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다. 산마루에서는 화려하고 윤기가 흐르던 산자락의 단풍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말라버린 단풍잎이 이리저리 휘날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는 벌써 겨울준비에 들어갔다.
고추봉을 지나 검단산의 주능선인 남쪽 산등성이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험한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참나무가 주를 이룬 숲에서 살아남기가 힘겨운 것일까? 소나무는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활기찬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참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바위틈이나 산등성이에서 일반 소나무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이런 소나무의 기형적인 모습은 생존본능으로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기형으로 자란 소나무가 정상적인 소나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참나무도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나무가 많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라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참나무도 시들음병이 번져 인간들에게 무참하게 도륙을 당하고 있다.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인간적인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나무에게도 삶의 권리가 있을 것인데 말이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린 참나무를 잘라 천막을 씌워 놓았다.
힘든 산길을 걷는 중에 편안한 의자가 놓여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는 없을 것이다. 나무는 가끔 산꾼들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또 나무들은 기이한 생김새로, 때로는 화려한 치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꽃보다 단풍? 늘 봄의 전령처럼 여기던 진달래가 고운 단풍으로 이 가을의 향연을 더욱 빛내고 있다.
나무들이 계절을 혼동하기도 한다. 올 가을처럼 포근한 날씨라면 나무들도 봄으로 착각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양지 바른 곳의 진달래는 파란 새잎을 피우고, 꽃봉오리를 탐스럽게 맺은 나무도 있다.
산곡초교 갈림길이 있는 남쪽 주능선의 안부이다. 숲속에 비닐막을 치고 막걸리며, 아이스크림 등 먹을 거리를 팔고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590미터로 안내 되어있다. 굵은 소나무가 참나무 틈에서도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 바로 아래 곱돌약수터 갈림길이다. 정상 부근에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꽤나 공을 들여 만든 것 같은데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정상부근에 이런 시설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무계단을 설치하기보다는 정상 바로 아래와 같이 돌계단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 나무판에 얼음이 얼면 돌계단이나 일반 등산로보다 더 미끄럽다.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오히려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위험요소를 만들어 놓은 꼴이다. 산행의 안전과 자연훼손을 막기 위한 시설이라면 좀더 신중하게 설치했어야 했다. 전문 산악인들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한 전시행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검단산 정상에는 오후 1시경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꽤 넓은 공간이다. 정상에서 막걸리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세곳이나 된다. 요즘 산 정상이나 안부에는 잡상인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갈수록 늘어난다. 좀더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먹는 사람이 없다면 자연히 잡상인들도 없어질 것이다.
정상에서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뿌연 안개 속이다. 안개 사이로 언듯언듯 하남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상 부근 너럭바위에 앉아 빵과 커피로 요기를 했다. 약간 싸늘한 산마루의 공기도 따끈한 커피향에 스르르 녹아든다.
북쪽 산등성이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라는 소나무를 보느라 산행시간이 길어졌다. 산마루의 거친 풍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온 나무들이다. 수십 회 산행에서도 늘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나무들이 내가 관심을 갖는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비 꼬인 가지가 회오리 바람을 연상시킨다. 설마 사람들의 발길이 싫어서 몸을 비튼 건 아니겠지....
보면 볼수록 꿋꿋한 모습이 금방 하늘로 비상할 것만 같다.
머리를 풀헤친 요염한 여인 자태를 닮았다. 누구를 유혹하려는 것일까?
가슴을 활짝 열고 저 푸른 들판으로 달려간다.
궁사가 활을 쏘는 자세를 닮았다.
우람한 근육질의 보디빌더
아찔한 벼랑끝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소나무의 모습이 아름답다.
모진 풍상을 이겨낸 영광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