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어가고
온통 가을 분위기다. 도심의 가로에는 은행잎이 노란빛을 발하고, 공원에는 빨간, 파랑, 노랑이 뒤섞여 휘날리는 단풍잎이 눈동자를 어지럽힌다. 가까운 남한산도 단풍이 절정이다. 멀리 사는 고현창 부부와 안혁환이 산행에 동행했다. 남한산성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는 일찌감치 온 산행객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늘 주말이면 붐비는 곳이지만 오늘은 유독 많은 사람들로 등산로가 가득 찼다. 지금이 가을산행 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날씨가 아직 약간 덥긴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다.
얼마전에 새로 정비한 남한산성 입구 산행들머리인 만남의 장소에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만남의 장소를 정비하면서 남한산성 도립공원 등산 안내도를 새로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에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 탐방을 겸한 남한산성 일주를 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나도 아내 함께 두번 남한산성 일주산행을 한 바 있다.
버스종점에는 등산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가 쉴새없이 들고 난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이번 주에는 특히 단체 산행이 많아 일행을 기다리는 눈길이 많다. 가을에는 많은 직장 단체들이 운동회 대신 산행을 하는 것 같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고현창 부부가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여 11시경에 산행에 들어갔다. 산행들머리인 버스종점에서 상점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자 노란 물감을 뿌리기라도 한듯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직 푸른 빛이 남아 있는 나무들도 있지만 머지 않아 노란 물이 들 것이다. 점퍼를 입은 것이 약간 덥게 느껴진다.
남한천 약수터 돌탑은 언제부턴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볼거리가 되었다. 남한산에는 약수터가 많은 편인데 특히 남한천 약수터는 물의 양이 많고,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이 흐릿하다. 가지고간 카메라 건전지가 다 떨어졌는 예비 건전지를 준비하지 못해 아쉬운대로 휴대폰으로 찍은 것이다.
남한천 약수터까지는 산행에 별 어려움이 없으나 약수터를 지나면서부터 급경사 길이 시작된다. 약수터 옆 의자에 앉아 귤을 나눠먹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어장대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긴 의자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방송이 흘러나왔다.
"문화재가 있는 경내에서는 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모두들 두리번 거리며 사방을 둘러 보아도 자리를 깔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를 보고 하는 방송 같았다. 나는 얼른 먹던 단감을 봉지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수어장대 돌담을 따라 군데군데 가로등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감시카메라로 원격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없었던 일이다.
30여년 전에 천도리를 호령하던 역전(力戰)의 용사들이 수어장대에 함께 올랐다. 건전지가 잠시 살아난 틈에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휴대폰 카메라와는 화질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아마 카메라기 없었다면 이렇게 생생한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는 내 기억을 되살려주는 보조기억장치이다.
빨간 단풍으로 뒤덮인 수어장대 주변은 단풍구경 나온 인파로 가득찼다. 빨강 노랑 단풍 낙엽으로 덮인 길을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수어장대 바로 아래쪽에는 공연장이 있다. 오늘은 풀피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풀피리 부는 방법을 직접 관객들에게 가려쳐 주기도 한다.
수어장대와 공연장을 지나 서쪽 성곽을 따라 오다가 서문을 빠져나왔다. 서문에서는 갈림길이 많이 있으나 우리는 조금 한가한 계곡길을 따라 내려왔다. 산을 다내려왔을 때는 오후 한시가 넘어 있었다. 가끔 들렀던 두부요리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순두부국을 시켜 먹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 했다.